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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무 지음, 『한국 외군의 외교·군사사』
황병무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요약
군사력은 내우(변란)와 외한(침략)으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보호하는 능력이다.한국에는 1882년 임오군란이후 현재까지(1885-93, 1949.6-1950 제외)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외군차용이 한국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친 득과 실은 무었인가?본서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저술이다. 내우가 외환을 불러오고 외환이내우를 더욱 키운다는 내우외환의 연계정책을 분석의 틀로 이용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제1부는 임오군란과 갑오농민혁명 및 대한제국의 종말 등 6가지 사례를 분석했다. 외세를 빌려 내우를 해결하면 국방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국권이 상실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제2부는 외군주도의 광복(분단)과 6.25전쟁(정전)을 분석했다. 제3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의미를 평화보장력,포기(철수),연루(북핵, 사드), 제한(핵, 미사일 개발)의 시각에서 분석한 후 각 장의 정책적 명제를 도출했으며 끝으로 책임국방을 향한 과제를 다뤘다. (2020. 9 출간 박영사) 관리자 2020.12.08
황병무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요약
군사력은 내우(변란)와 외한(침략)으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보호하는 능력이다.한국에는 1882년 임오군란이후 현재까지(1885-93, 1949.6-1950 제외)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외군차용이 한국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친 득과 실은 무었인가?본서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저술이다. 내우가 외환을 불러오고 외환이내우를 더욱 키운다는 내우외환의 연계정책을 분석의 틀로 이용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제1부는 임오군란과 갑오농민혁명 및 대한제국의 종말 등 6가지 사례를 분석했다. 외세를 빌려 내우를 해결하면 국방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국권이 상실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제2부는 외군주도의 광복(분단)과 6.25전쟁(정전)을 분석했다. 제3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의미를 평화보장력,포기(철수),연루(북핵, 사드), 제한(핵, 미사일 개발)의 시각에서 분석한 후 각 장의 정책적 명제를 도출했으며 끝으로 책임국방을 향한 과제를 다뤘다. (2020. 9 출간 박영사) 관리자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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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선 지음,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 국가 건설의 시대 1945~1950
국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던신생 대한민국이 붕괴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자원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한국 정부는 군대와 경찰 같은 안보 자원뿐만 아니라 재정과 인력 측면에서도 심각한 부족에 허덕였다. 국가는 부족한 물적 자원의 대체물로 ‘민족주의’라는 이념 자원을 수시로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북한이라는 실질적인 군사적 위험, 국내에 발생한 광범위한 저항과 반란의 위협 앞에 민족주의 이념은 수축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겪었다. 생존의 기로에서 국가는 부일 세력과 우익 단체를 국가 건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안보 위기를 넘겼으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폭력과 유혈, 국가범죄로 인해 정치적 정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공화국은 정치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토지개혁과 의무교육 등 사회 개혁을 추진했고, 그 결과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귀속감이 증대했다. 이를 지켜본 중도파들이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가 건설에 대거 참여해 정치적인 정당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적어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신생 대한민국의 정치ㆍ사회적 안정성이 상당 부분 확보되었다. 촉박한 국가 수립 일정, 부족한 예산 및 자원 속에서 초라하게 탄생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대국이자 세계 7위의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이 책은 취약국가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근대국가 건설 과정을 객관적ㆍ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시도이자, 그 시대를 산 건설자들에 대한 헌사이다.
저자소개저자 : 이택선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해방 전후의 한국 정치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타운대학교 외교학대학원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연구원과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와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명 전환기 권력의 이동에 따른 한국의 국가 건설과 외교이며,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의 보편성을 중시하면서도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역사적 설명과 독자적 이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문화협력체 추진방안 연구』(공저, 2020), 『한국 근대 공화주의자 6인의 리더십』(공저, 2019), 『북한과 국제정치』(공저, 2018),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미관계』(공저, 2014), 『지식과 국제정치』(공저, 2008) 등이 있다.
목차머리말
1장 취약국가론의 배경
현대사를 보는 두 관점|취약국가론의 핵심
2장 취약국가 탄생의 서막
미군정의 상황(1945년 9월~1948년 8월)|미군정기의 경찰|미군정기의 군대|미군정기의 재정·조세 기구
3장 내란의 시작
본격화된 내란과 5·10 총선거|노동쟁의와 파업의 본격화|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좌우익 청년단체|제헌의회 선거와 향보단|제주 4·3 사건
4장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 1
초라한 출발|부족한 예산과 안보 위기로 미뤄진 경찰 개혁|대한민국 초기의 군대|초기의 재정·조세 기구
5장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 2
미국을 만족시킨 젊은 장교들|제헌헌법|좌초된 반민특위|여수·순천 사건|국가보안법과 일민주의|토지개혁|의무교육 실시와 근대인의 정체성 수립|중도파의 국가 건설 참여|국가성의 획득과 기획처의 활약
6장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다
과대 성장 국가론의 신화|취약국가 형성 과정에서 발견되는 한국 특유의 특징
후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책 속으로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을 지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부족한 원조와 지원을 받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신화를 연출한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학살이나 잘못을 기술한 연구들은 많았지만, 실제 건설 과정을 외부의 시선과 국가 건설 이론에 비추어 살펴본 연구는 거의 없었다. (7쪽)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시기를 맞은 한국에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먼저 미국이 1947년 7월까지만 해도 소련과의 협상을 통한 미군 철수에 집중하느라 적극적으로 국가 건설에 임하지 않아 한국은 미군정 시기부터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원시적 취약성을 지니는 취약국가로 출발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해방 직후부터 소련의 지원하에 신속하게 국가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37쪽)
초기 미군정 경찰의 행보를 살펴보면 친일 경찰을 제거하고 경찰 개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1947년 6월 미군정이 작성한 집계에 따르면, 당시 전체 경찰의 80% 이상이 해방 이전에는 경찰에 재직하지 않았다. 경무부 소속 경찰관의 83%, 수도경찰청의 83%, 각 관구 경찰청의 77~88%, 철도 관구 경찰청의 80%가 일본 경찰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77쪽)
후술하겠지만 김석원 등 노련한 일본 군대 경험자들이 전면에 부상하는 것은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수ㆍ순천 사건으로 국가안보의 위기가 극에 달하는 시점이었고, 그 전까지는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들 스스로가 참여를 기피했다. 따라서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에는 광복군 출신들이 절대적인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의 최고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87쪽)
랜드 연구소의 연구에서는 경찰에게 월급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2~3배를 지불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1945년 9월 당시 한국 경찰의 봉급은 국민 평균 소득의 2~3배인 80~120달러가 아니라 3달러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1946년 1월경 소련군정을 위해 일했던 번역원의 월급은 200루블 정도였는데, 1949년 3월경 스탈린의 환산에 따르면 1달러는 5루블로 계산될 수 있었으므로 약 40달러의 월급을 받았던 셈이다. 또 1950년 2월경 소련 고등군사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던 북한의 위관급 장교들의 경우 소위가 1,300루블 정도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졌는데, 이 금액 역시 약 260달러로 환산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자료들은 북한에 비해 남한의 국가 건설 자금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반도에 대한 소련과 미국의 관심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1~112쪽)
당시 이승만은 치안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자신을 탄핵하는 세력의 선봉에 섰던 신성모에게 내무부 장관과 대한청년단 단장직을 동시에 맡기고 있었다. 이는 출범 초기부터 일종의 내전 상태에 직면해 합법적 폭력에 실패한 경찰과 군대가 청년단체에게 국가 치안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반공주의를 표방한 청년단체의 총인원 수는 600만여 명으로 한국 정치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164쪽)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부의 정통성 중심에 섰을지도 모르는 광복군 출신들은 한국전쟁 이후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일본군 출신 그룹을 제치지 못하고, 송호성의 몰락과 함께 아무도 참모총장이 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신생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빨치산 세력과 북한군 때문에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역시 민족주의적 정통성의 이념 자원이 아니라 안보에 관한 능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176쪽)
이러한 농지개혁의 결과, 1945년 14.2%에 불과했던 자작농의 비율이 1951년 80.7%로 상승했으며 순소작농의 비율 역시 50.2%에서 3.9%로 감소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정보 이상을 소유한 지주계급의 비율이 2,3%에서 0.1%로 감소함으로써 지주계급이 사실상 해체되었다는 사실이다. (243쪽)
랜드 연구소의 연구 역시 치안을 국가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다. 최소한의 치안과 안보가 달성된 이후 시민사회가 출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반이 제공되고, 최종적으로 외부 지원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법체계를 바탕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치안과 안보는 시민사회가 출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반을 제공하는 개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중시되어야 한다. (269쪽
출판사 서평‘국가 형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본 해방 전후사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관점에서 객관적, 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인 이택선 박사(서울대 외교학과)는 ‘근대국가는 합법적 폭력의 독점에서 출발한다’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 따라 핵심 국가기구인 경찰과 군대, 재정 및 조세 기구의 형성 과정을 기술하면서 신생 대한민국의 탄생과 국제정치적 배경을 살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형성 과정을 연구한 랜드 연구소의 표준 국가 모델과 비교 검토한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21세기의 국가 건설 사례들과 비교해보아도 턱없이 부족한 자원을 가졌던 대한민국이 지난한 역사 속에서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는 한편으로 모범적이면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신생 대한민국은 어떻게 그토록 부족한 자원과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오늘날에 수없이 볼 수 있는 파탄국가(failed nation)들처럼 붕괴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을까? 또한 취약국가에서 출발하여 숱한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노출된 취약성이 어떻게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을까?
과대 성장 국가가 아니라 취약국가로 태어난 대한민국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관점 중 하나인 ‘수정주의’는 한국이 처음부터 과대 성장 국가로 출발했다고 말해왔다. 과대 성장 국가론은 브루스 커밍스 등의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이 제시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시민사회가 형성되기도 전에 근대적인 관료 체계와 경찰력을 가진 국가기관들이 비대하게 성장하여 사회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 이택선 박사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한국은 처음부터 물적ㆍ인적 자원이 부족하여 국가기구가 허약한 취약국가로 출발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한국은 과대 성장 국가가 아니라 모든 자원이 부족한 취약국가였다.
미국은 처음부터 대한민국 ‘국가 건설’ 계획이 없었다
해방 후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국은 애당초 한국인들의 국가 건설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은 물적 자원이 부족해 미국의 원조에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매우 불충분했다.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유럽에 비해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대외 경제원조 비율은 유럽과 일본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미국이 유럽에서의 공산주의 봉쇄에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47년 7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완전히 결렬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에서 품위 있게 철수하는 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한국의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해방 후 1년 동안 남한 경제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인데도 미군정은 예산과 자원 부족을 들어 장기적인 경제 건설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다. 민생과 직결된 문제에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고 소극적인 관리와 유지에 급급했다. 이러한 사정은 미군정 기간에 도입된 4억 3,400만 달러어치의 원조 물자 가운데 식료품이 전체의 39%를 차지한 반면, 건축자재와 철도자재는 1.7%와 3%에 불과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군정은 공무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봉급마저 지불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공무원들이 상납과 뇌물에 의존하고 원조 물자를 밀거래하는 등 부패 문제가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민족주의에 의존한 미군정
미군정은 물적 자원의 절대적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이념 자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미군정도 처음에는 경찰과 군대에 친일 부역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항일 투쟁과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을 가진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고위 관리직에 임명하여 이념 자원을 활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승만과 같은 우파 정치인을 주로 지원하기보다는 김구, 김규식 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중도파들을 포괄하는 연합노선을 시도했다. 청년단체도 극우 반공 단체 대신 임정 출신들을 중심으로 출범해 정통성을 지니고 있던 조선민족청년단 같은 단체를 공식 후원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의 부족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근대국가의 핵심 기능인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고 관료제 행정을 담당할 인력의 부족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부일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가 국가 건설에 참여하다
1946년 4월부터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자 치안 분야에서 상당한 공백이 발생했다. 이를 틈타 공산 세력들이 국가 전복을 시도했지만 미군정은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치안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한국은 식량 문제가 심각했는데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과 월남민의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부패와 금품 강요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1945년 9월 기준 한국 경찰의 봉급은 3달러에 불과했는데, 이는 북한 위관급 장교들이 받은 260달러(1,300루블)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식량 부족과 만연한 부패는 민중의 불만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1일 대구 항쟁이 발발했다. 대구는 당시 “제2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좌익 세력이 강성한 도시였다.
미군정은 국가에 대항하는 폭력 세력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결국 우파 청년단체들의 협력을 용인했다. 우익 청년단체들이 국가 건설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부일 관료들도 국가기구에 계속 존속하게 되었다. 미군정은 일제 치하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한국인을 최대한 동원하는 방식으로 경찰력을 증강했다. 그리하여 1948년에 이르면 2~3년 전에 비해 경찰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
광복군 중심의 군대에서 부일 세력의 군대로
1947년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자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도 규모가 커져 7개월 만에 3배 증가했다.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에는 광복군 출신들이 절대적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최고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국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군 출신의 군 지도부는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은 갖췄을지 모르나 현대적 전술과 지식을 구비하지 못했고 무능했다. 1948년 제주 4ㆍ3사건과 여수ㆍ순천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 출신의 군인들이 다시 기용되었다. 국가안보 위기가 발생하자 일제강점기의 전력을 이유로 스스로 근신하고 있었던 50~60대의 일본군 출신자들이 1947년 말부터 전격 입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8년부터 제주도와 여수, 순천, 옹진 지구 등 최전선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이와 함께 20~30대의 젊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미국이 요구하는 현대전의 기준을 빠르게 수용하면서 군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국가 건설과 안보 위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협상 결렬로 갑작스럽게 국가 건설이 결정되었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인민의 열망으로 제헌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김구와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는 분단 고착화를 염려하여 국가 건설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1948년 4월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주도에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 사태가 일어나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뒤이어 10월에 일어난 여수ㆍ순천 사건으로 신생 대한민국은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군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에 대한 진압을 거부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여수ㆍ순천 사건은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발생한 좌익의 본격적인 봉기였으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과 같은 막대한 국가 폭력이 행해졌고 전체 희생자가 1만여 명에 달했다.
여수ㆍ순천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보의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했다. 안보적 위험에서 초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극단적 조치들이 계속 시행되었는데,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것이다. 또한 반민특위가 해산하게 되었으며, 경찰과 군대 규모가 급증했고, 국가안보의 명목으로 부일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낯선 제헌헌법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들
대한민국 초기 국가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족했던 자원들을 대신하여 이념 자원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즉 임시정부의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열망을 충족시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높이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제헌헌법의 제정이다. 특히 제헌헌법이 가진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들은 자유시장경제와 현격한 거리가 있어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낯선 측면이 있다. 이는 임시정부가 표방했던 삼균주의를 계승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토지의 국유화, 정치ㆍ경제 및 교육에서의 평등을 강조한 임시정부의 삼균주의는 국유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거리를 두었다. 제헌헌법 역시 중요 자원과 중요 기업에 관해 국유ㆍ국영 제도를 원칙으로 했으며 토지개혁과 의무무상교육을 주창했다. 이렇게 자본주의경제 질서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권리들이 헌법상으로 시도될 수 있었던 것은 임시정부의 헌법을 계승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정치 현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상당 부분 자리 잡은 현 시점에서는 모순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물적ㆍ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국가가 직접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활동하면서 일제가 남기고 간 기업들을 운영 관리해야 했던 당시의 현실에서는 매우 적절한 조항들이었다.
토지개혁, 국가 건설의 정점
대통령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추진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정통성을 획득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국가 건설 과정에 반영하고, 부일 관료들을 계속 기용한 탓에 훼손되었던 민족주의적 이념 자원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토지개혁은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군림하던 지주가 사라지고 국가 구성원 모두가 근대국가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1949년 6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기초로 한 농지개혁 법안에 따라 농민들이 농지를 분배받았다. 토지개혁 성공의 이면에는 조봉암의 공로가 컸다. 물론 공산당 출신인 조봉암을 발탁한 것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토지개혁으로 한국민주당의 경제 기반 약화, 농민의 지지 확보, 좌파의 공세 차단이라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토지개혁으로 자신 소유의 농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된 농민들은 한동안 이승만의 주요 지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북한 공산군의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지했다.
중도파의 참여로 안정화되는 신생 공화국
토지개혁과 의무교육제도의 실시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귀속감이 증대하자, 다수의 임시정부 출신 인사들과 중도파 인사들이 점차 대한민국의 건국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자 했다. 제헌의회 선거를 거부했던 다수의 중도파들도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부분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당선되었다. 특히 삼균주의의 아버지인 조소앙은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안재홍, 조소앙, 원세훈, 윤기섭, 오하영 등의 중도파 당선자들이 중도 무소속 세력을 이끌고 새로운 정치를 펼칠 것을 다짐하는 분위기였다.
제1공화국이 점차 안정화되어감에 따라 국가 내부의 자생적인 발전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획처장 이순탁과 기획처의 중도파 관료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기획처는 경제기획원의 전신에 해당하는 기구로, 당시의 기획처는 생산과 분배를 계획경제체제로 운영하려는 중간파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순탁은 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는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없고 종합적인 국가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1950년 즈음에는 예산이 균형을 이루고 세입이 증가했으며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환율이 안정되는 가운데 경제 전망이 바람직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미군이 완전 철수하면 쉽게 무너질 것 같았던 제1공화국은 미국의 지원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는데도 경제의 부분적 회복과 균형재정을 이루며 한계 속에서도 점차 국가성을 획득해나가고 있었다.
피땀눈물로 이룬 국가 건설의 역사
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건설의 역사는 그 출발선에서부터 안보, 물자, 인력 등 모든 차원에서 자원이 심대하게 부족했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 건설 과정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이념 자원을 수시로 동원한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생 공화국은 금세 절체절명의 안보 위기를 겪음으로 인해 민족을 배신했던 부일 관리들을 기용하고 폭력적인 우익 청년단체를 준국가기구로 활용하여 이념 자원을 훼손하는 질곡의 길을 걸어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념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민족주의적 대의명분과 정치적 정통성은 높으나 국가 관료로서의 능력은 떨어지던 인물들이 국가 건설 과정 초기에 기용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과 비능률이 발생했고, 전문가들이 이들을 대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그 이후로도 반공과 반일이라는 이념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었고, 건국 초기부터 노정된 취약성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깊은 분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붕괴하지 않고 살아남아 상당한 수준의 번영을 이루었다. 촉박한 국가 수립 일정, 부족한 예산 및 자원 속에서 초라하게 탄생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대국이자 세계 7위의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이 책은 취약국가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근대국가 건설 과정을 객관적ㆍ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시도이자, 그 시대를 산 건설자들에 대한 헌사이다.
이택선 2020.11.30
국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던신생 대한민국이 붕괴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자원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한국 정부는 군대와 경찰 같은 안보 자원뿐만 아니라 재정과 인력 측면에서도 심각한 부족에 허덕였다. 국가는 부족한 물적 자원의 대체물로 ‘민족주의’라는 이념 자원을 수시로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북한이라는 실질적인 군사적 위험, 국내에 발생한 광범위한 저항과 반란의 위협 앞에 민족주의 이념은 수축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겪었다. 생존의 기로에서 국가는 부일 세력과 우익 단체를 국가 건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안보 위기를 넘겼으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폭력과 유혈, 국가범죄로 인해 정치적 정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공화국은 정치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토지개혁과 의무교육 등 사회 개혁을 추진했고, 그 결과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귀속감이 증대했다. 이를 지켜본 중도파들이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가 건설에 대거 참여해 정치적인 정당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적어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신생 대한민국의 정치ㆍ사회적 안정성이 상당 부분 확보되었다. 촉박한 국가 수립 일정, 부족한 예산 및 자원 속에서 초라하게 탄생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대국이자 세계 7위의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이 책은 취약국가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근대국가 건설 과정을 객관적ㆍ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시도이자, 그 시대를 산 건설자들에 대한 헌사이다.
저자소개저자 : 이택선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해방 전후의 한국 정치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타운대학교 외교학대학원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연구원과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와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명 전환기 권력의 이동에 따른 한국의 국가 건설과 외교이며,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의 보편성을 중시하면서도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역사적 설명과 독자적 이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문화협력체 추진방안 연구』(공저, 2020), 『한국 근대 공화주의자 6인의 리더십』(공저, 2019), 『북한과 국제정치』(공저, 2018),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미관계』(공저, 2014), 『지식과 국제정치』(공저, 2008) 등이 있다.
목차머리말
1장 취약국가론의 배경
현대사를 보는 두 관점|취약국가론의 핵심
2장 취약국가 탄생의 서막
미군정의 상황(1945년 9월~1948년 8월)|미군정기의 경찰|미군정기의 군대|미군정기의 재정·조세 기구
3장 내란의 시작
본격화된 내란과 5·10 총선거|노동쟁의와 파업의 본격화|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좌우익 청년단체|제헌의회 선거와 향보단|제주 4·3 사건
4장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 1
초라한 출발|부족한 예산과 안보 위기로 미뤄진 경찰 개혁|대한민국 초기의 군대|초기의 재정·조세 기구
5장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 2
미국을 만족시킨 젊은 장교들|제헌헌법|좌초된 반민특위|여수·순천 사건|국가보안법과 일민주의|토지개혁|의무교육 실시와 근대인의 정체성 수립|중도파의 국가 건설 참여|국가성의 획득과 기획처의 활약
6장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다
과대 성장 국가론의 신화|취약국가 형성 과정에서 발견되는 한국 특유의 특징
후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책 속으로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을 지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부족한 원조와 지원을 받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신화를 연출한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학살이나 잘못을 기술한 연구들은 많았지만, 실제 건설 과정을 외부의 시선과 국가 건설 이론에 비추어 살펴본 연구는 거의 없었다. (7쪽)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시기를 맞은 한국에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먼저 미국이 1947년 7월까지만 해도 소련과의 협상을 통한 미군 철수에 집중하느라 적극적으로 국가 건설에 임하지 않아 한국은 미군정 시기부터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원시적 취약성을 지니는 취약국가로 출발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해방 직후부터 소련의 지원하에 신속하게 국가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37쪽)
초기 미군정 경찰의 행보를 살펴보면 친일 경찰을 제거하고 경찰 개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1947년 6월 미군정이 작성한 집계에 따르면, 당시 전체 경찰의 80% 이상이 해방 이전에는 경찰에 재직하지 않았다. 경무부 소속 경찰관의 83%, 수도경찰청의 83%, 각 관구 경찰청의 77~88%, 철도 관구 경찰청의 80%가 일본 경찰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77쪽)
후술하겠지만 김석원 등 노련한 일본 군대 경험자들이 전면에 부상하는 것은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수ㆍ순천 사건으로 국가안보의 위기가 극에 달하는 시점이었고, 그 전까지는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들 스스로가 참여를 기피했다. 따라서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에는 광복군 출신들이 절대적인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의 최고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87쪽)
랜드 연구소의 연구에서는 경찰에게 월급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2~3배를 지불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1945년 9월 당시 한국 경찰의 봉급은 국민 평균 소득의 2~3배인 80~120달러가 아니라 3달러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1946년 1월경 소련군정을 위해 일했던 번역원의 월급은 200루블 정도였는데, 1949년 3월경 스탈린의 환산에 따르면 1달러는 5루블로 계산될 수 있었으므로 약 40달러의 월급을 받았던 셈이다. 또 1950년 2월경 소련 고등군사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던 북한의 위관급 장교들의 경우 소위가 1,300루블 정도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졌는데, 이 금액 역시 약 260달러로 환산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자료들은 북한에 비해 남한의 국가 건설 자금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반도에 대한 소련과 미국의 관심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1~112쪽)
당시 이승만은 치안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자신을 탄핵하는 세력의 선봉에 섰던 신성모에게 내무부 장관과 대한청년단 단장직을 동시에 맡기고 있었다. 이는 출범 초기부터 일종의 내전 상태에 직면해 합법적 폭력에 실패한 경찰과 군대가 청년단체에게 국가 치안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반공주의를 표방한 청년단체의 총인원 수는 600만여 명으로 한국 정치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164쪽)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부의 정통성 중심에 섰을지도 모르는 광복군 출신들은 한국전쟁 이후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일본군 출신 그룹을 제치지 못하고, 송호성의 몰락과 함께 아무도 참모총장이 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신생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빨치산 세력과 북한군 때문에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역시 민족주의적 정통성의 이념 자원이 아니라 안보에 관한 능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176쪽)
이러한 농지개혁의 결과, 1945년 14.2%에 불과했던 자작농의 비율이 1951년 80.7%로 상승했으며 순소작농의 비율 역시 50.2%에서 3.9%로 감소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정보 이상을 소유한 지주계급의 비율이 2,3%에서 0.1%로 감소함으로써 지주계급이 사실상 해체되었다는 사실이다. (243쪽)
랜드 연구소의 연구 역시 치안을 국가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다. 최소한의 치안과 안보가 달성된 이후 시민사회가 출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반이 제공되고, 최종적으로 외부 지원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법체계를 바탕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치안과 안보는 시민사회가 출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반을 제공하는 개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중시되어야 한다. (269쪽
출판사 서평‘국가 형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본 해방 전후사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관점에서 객관적, 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인 이택선 박사(서울대 외교학과)는 ‘근대국가는 합법적 폭력의 독점에서 출발한다’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 따라 핵심 국가기구인 경찰과 군대, 재정 및 조세 기구의 형성 과정을 기술하면서 신생 대한민국의 탄생과 국제정치적 배경을 살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형성 과정을 연구한 랜드 연구소의 표준 국가 모델과 비교 검토한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21세기의 국가 건설 사례들과 비교해보아도 턱없이 부족한 자원을 가졌던 대한민국이 지난한 역사 속에서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는 한편으로 모범적이면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신생 대한민국은 어떻게 그토록 부족한 자원과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오늘날에 수없이 볼 수 있는 파탄국가(failed nation)들처럼 붕괴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을까? 또한 취약국가에서 출발하여 숱한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노출된 취약성이 어떻게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을까?
과대 성장 국가가 아니라 취약국가로 태어난 대한민국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관점 중 하나인 ‘수정주의’는 한국이 처음부터 과대 성장 국가로 출발했다고 말해왔다. 과대 성장 국가론은 브루스 커밍스 등의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이 제시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시민사회가 형성되기도 전에 근대적인 관료 체계와 경찰력을 가진 국가기관들이 비대하게 성장하여 사회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 이택선 박사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한국은 처음부터 물적ㆍ인적 자원이 부족하여 국가기구가 허약한 취약국가로 출발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한국은 과대 성장 국가가 아니라 모든 자원이 부족한 취약국가였다.
미국은 처음부터 대한민국 ‘국가 건설’ 계획이 없었다
해방 후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국은 애당초 한국인들의 국가 건설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은 물적 자원이 부족해 미국의 원조에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매우 불충분했다.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유럽에 비해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대외 경제원조 비율은 유럽과 일본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미국이 유럽에서의 공산주의 봉쇄에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47년 7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완전히 결렬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에서 품위 있게 철수하는 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한국의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해방 후 1년 동안 남한 경제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인데도 미군정은 예산과 자원 부족을 들어 장기적인 경제 건설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다. 민생과 직결된 문제에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고 소극적인 관리와 유지에 급급했다. 이러한 사정은 미군정 기간에 도입된 4억 3,400만 달러어치의 원조 물자 가운데 식료품이 전체의 39%를 차지한 반면, 건축자재와 철도자재는 1.7%와 3%에 불과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군정은 공무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봉급마저 지불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공무원들이 상납과 뇌물에 의존하고 원조 물자를 밀거래하는 등 부패 문제가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민족주의에 의존한 미군정
미군정은 물적 자원의 절대적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이념 자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미군정도 처음에는 경찰과 군대에 친일 부역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항일 투쟁과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을 가진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고위 관리직에 임명하여 이념 자원을 활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승만과 같은 우파 정치인을 주로 지원하기보다는 김구, 김규식 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중도파들을 포괄하는 연합노선을 시도했다. 청년단체도 극우 반공 단체 대신 임정 출신들을 중심으로 출범해 정통성을 지니고 있던 조선민족청년단 같은 단체를 공식 후원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의 부족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근대국가의 핵심 기능인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고 관료제 행정을 담당할 인력의 부족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부일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가 국가 건설에 참여하다
1946년 4월부터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자 치안 분야에서 상당한 공백이 발생했다. 이를 틈타 공산 세력들이 국가 전복을 시도했지만 미군정은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치안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한국은 식량 문제가 심각했는데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과 월남민의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부패와 금품 강요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1945년 9월 기준 한국 경찰의 봉급은 3달러에 불과했는데, 이는 북한 위관급 장교들이 받은 260달러(1,300루블)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식량 부족과 만연한 부패는 민중의 불만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1일 대구 항쟁이 발발했다. 대구는 당시 “제2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좌익 세력이 강성한 도시였다.
미군정은 국가에 대항하는 폭력 세력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결국 우파 청년단체들의 협력을 용인했다. 우익 청년단체들이 국가 건설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부일 관료들도 국가기구에 계속 존속하게 되었다. 미군정은 일제 치하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한국인을 최대한 동원하는 방식으로 경찰력을 증강했다. 그리하여 1948년에 이르면 2~3년 전에 비해 경찰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
광복군 중심의 군대에서 부일 세력의 군대로
1947년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자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도 규모가 커져 7개월 만에 3배 증가했다.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에는 광복군 출신들이 절대적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최고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국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군 출신의 군 지도부는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은 갖췄을지 모르나 현대적 전술과 지식을 구비하지 못했고 무능했다. 1948년 제주 4ㆍ3사건과 여수ㆍ순천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 출신의 군인들이 다시 기용되었다. 국가안보 위기가 발생하자 일제강점기의 전력을 이유로 스스로 근신하고 있었던 50~60대의 일본군 출신자들이 1947년 말부터 전격 입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8년부터 제주도와 여수, 순천, 옹진 지구 등 최전선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이와 함께 20~30대의 젊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미국이 요구하는 현대전의 기준을 빠르게 수용하면서 군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국가 건설과 안보 위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협상 결렬로 갑작스럽게 국가 건설이 결정되었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인민의 열망으로 제헌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김구와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는 분단 고착화를 염려하여 국가 건설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1948년 4월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주도에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 사태가 일어나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뒤이어 10월에 일어난 여수ㆍ순천 사건으로 신생 대한민국은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군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에 대한 진압을 거부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여수ㆍ순천 사건은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발생한 좌익의 본격적인 봉기였으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과 같은 막대한 국가 폭력이 행해졌고 전체 희생자가 1만여 명에 달했다.
여수ㆍ순천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보의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했다. 안보적 위험에서 초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극단적 조치들이 계속 시행되었는데,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것이다. 또한 반민특위가 해산하게 되었으며, 경찰과 군대 규모가 급증했고, 국가안보의 명목으로 부일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낯선 제헌헌법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들
대한민국 초기 국가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족했던 자원들을 대신하여 이념 자원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즉 임시정부의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열망을 충족시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높이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제헌헌법의 제정이다. 특히 제헌헌법이 가진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들은 자유시장경제와 현격한 거리가 있어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낯선 측면이 있다. 이는 임시정부가 표방했던 삼균주의를 계승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토지의 국유화, 정치ㆍ경제 및 교육에서의 평등을 강조한 임시정부의 삼균주의는 국유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거리를 두었다. 제헌헌법 역시 중요 자원과 중요 기업에 관해 국유ㆍ국영 제도를 원칙으로 했으며 토지개혁과 의무무상교육을 주창했다. 이렇게 자본주의경제 질서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권리들이 헌법상으로 시도될 수 있었던 것은 임시정부의 헌법을 계승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정치 현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상당 부분 자리 잡은 현 시점에서는 모순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물적ㆍ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국가가 직접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활동하면서 일제가 남기고 간 기업들을 운영 관리해야 했던 당시의 현실에서는 매우 적절한 조항들이었다.
토지개혁, 국가 건설의 정점
대통령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추진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정통성을 획득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국가 건설 과정에 반영하고, 부일 관료들을 계속 기용한 탓에 훼손되었던 민족주의적 이념 자원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토지개혁은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군림하던 지주가 사라지고 국가 구성원 모두가 근대국가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1949년 6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기초로 한 농지개혁 법안에 따라 농민들이 농지를 분배받았다. 토지개혁 성공의 이면에는 조봉암의 공로가 컸다. 물론 공산당 출신인 조봉암을 발탁한 것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토지개혁으로 한국민주당의 경제 기반 약화, 농민의 지지 확보, 좌파의 공세 차단이라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토지개혁으로 자신 소유의 농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된 농민들은 한동안 이승만의 주요 지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북한 공산군의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지했다.
중도파의 참여로 안정화되는 신생 공화국
토지개혁과 의무교육제도의 실시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귀속감이 증대하자, 다수의 임시정부 출신 인사들과 중도파 인사들이 점차 대한민국의 건국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자 했다. 제헌의회 선거를 거부했던 다수의 중도파들도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부분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당선되었다. 특히 삼균주의의 아버지인 조소앙은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안재홍, 조소앙, 원세훈, 윤기섭, 오하영 등의 중도파 당선자들이 중도 무소속 세력을 이끌고 새로운 정치를 펼칠 것을 다짐하는 분위기였다.
제1공화국이 점차 안정화되어감에 따라 국가 내부의 자생적인 발전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획처장 이순탁과 기획처의 중도파 관료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기획처는 경제기획원의 전신에 해당하는 기구로, 당시의 기획처는 생산과 분배를 계획경제체제로 운영하려는 중간파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순탁은 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는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없고 종합적인 국가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1950년 즈음에는 예산이 균형을 이루고 세입이 증가했으며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환율이 안정되는 가운데 경제 전망이 바람직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미군이 완전 철수하면 쉽게 무너질 것 같았던 제1공화국은 미국의 지원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는데도 경제의 부분적 회복과 균형재정을 이루며 한계 속에서도 점차 국가성을 획득해나가고 있었다.
피땀눈물로 이룬 국가 건설의 역사
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건설의 역사는 그 출발선에서부터 안보, 물자, 인력 등 모든 차원에서 자원이 심대하게 부족했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 건설 과정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이념 자원을 수시로 동원한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생 공화국은 금세 절체절명의 안보 위기를 겪음으로 인해 민족을 배신했던 부일 관리들을 기용하고 폭력적인 우익 청년단체를 준국가기구로 활용하여 이념 자원을 훼손하는 질곡의 길을 걸어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념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민족주의적 대의명분과 정치적 정통성은 높으나 국가 관료로서의 능력은 떨어지던 인물들이 국가 건설 과정 초기에 기용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과 비능률이 발생했고, 전문가들이 이들을 대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그 이후로도 반공과 반일이라는 이념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었고, 건국 초기부터 노정된 취약성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깊은 분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붕괴하지 않고 살아남아 상당한 수준의 번영을 이루었다. 촉박한 국가 수립 일정, 부족한 예산 및 자원 속에서 초라하게 탄생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대국이자 세계 7위의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이 책은 취약국가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근대국가 건설 과정을 객관적ㆍ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시도이자, 그 시대를 산 건설자들에 대한 헌사이다.
이택선 2020.11.30

247
박종희 엮음,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
박종희 엮음김남규․박종희․손윤규․안두환․우병원․이병재․차태서․하상응 지음
이 책은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경험과학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정치학의 연구 방법론 안내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학 방법론의 신성(新星)들을 모아 정치학 방법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정치학의 다양한 방법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저자들이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군분투한 결과, 실험, 인과적 추론, 시계열-횡단면 분석, 생존 분석, 베이지안 분석, 네트워크 분석, 담론 분석, 과정 추적 연구와 같은 중요한 방법론 주제에 대해 귀중한 안내의 글을 모을 수 있었다.
각 챕터의 내용은 최근 10년 동안 해당 방법론을 이용해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소장학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방법론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사변적인 해설을 지양하고 예제와 구체적인 설명으로 해당 방법론의 장점과 사용법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들이 최선을 다했다.
사회과학이나 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방법론이라는 문을 통해 정치학과 사회과학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인과적 추론인과추론은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지난 30여 년간 통계학, 사회과학 및 의학 등의 분야에서 인과추론의 방법론에 많은 개념적, 방법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이 장은 인과추론 방법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며, 반사실적 인과 개념, 잠재적 산출 프레임워크 및 사회과학/의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들에 대한 소개를 포함한다. 또한, 매개분석 및 구조방정식 모형에 대한 인과모델 관점에서의 논의도 제시된다.실험 연구 방법론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학 경험연구 분야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실험 연구 방법론의 기본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실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험을 수행하여 어떻게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연구 수행 도중 빈번히 겪는 문제점과 분석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한다. 구체적으로 균형점검, 조작점검, 비동조의 문제를 다루고, 하위집단 분석과 매개 분석을 통해 이미 발견된 인과효과가 작동하는 조건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방법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실험 연구의 약점인 외적 타당성 문제, 이론적 근거의 빈약성 문제, 그리고 윤리적 고려의 필요성 문제 등을 다루면서 실험 연구의 오용과 남용의 위험성을 지적한다.시계열-횡단면 자료 분석횡단면 자료와 시계열 자료를 결합한 시계열-횡단면 자료는 여러 정치학 이론의 시공간과 관련된 가설을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게 해 준다. 현재 시계열-횡단면 자료는 모든 정치학 분야의 양적 연구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자료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시계열-횡단면 자료의 특성을 살펴보고 통계분석을 할 경우 고려해야 할 이슈들을 살펴본다. 특히 시계열-횡단면 분석 모형의 오차항 구조, 개체 간 이질성, 동태적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분석의 예시를 통해 논의된 이슈들을 실제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사건사 분석사건사 분석은 어떤 사건의 발생 여부뿐만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 즉 사건의 역사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통계 분석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사건사 분석은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들이 사건의 발생과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독립변수들이 사건의 발생 확률과 사건 발생까지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증가 혹은 감소시키는지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정치학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분야, 보건학, 의학, 공학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사건사 분석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소개하고, 사건사 분석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사건사 분석이 어떤 연구 질문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담론 분석이 장에서는 국제정치학에서 담론 분석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의 학문에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본다. 우선 언어적/문화적/해석적 전환 이후 담론 연구의 내용을 특히 푸코주의적 관점에서 소개하면서, 담론 분석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들을 다루었다. 다음으로 소위 “제3논쟁”을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부상한 국제정치학 내에서 담론 연구의 현황을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담론 분석이 우리의 국제정치 연구에 주는 의미를 이론적 차원과 정책적 차원으로 나눠 고찰하였다.과정 추적 방법이 장에서는 1980년대 이래 질적 연구 분야에서 양적 연구의 파상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 주목받고 있는 과정 추적 방법을 소개한다. 특정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의 파악을 핵심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과정 추적 방법은 사회과학의 본질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는 연구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근래 미국 정치학계의 과정 추적 방법에 대한 논의를 대략적으로 정리한 뒤 구체적인 사례로서 양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관한 대표적인 두 역사학 연구를 재구성해 본다.베이지안 분석빅데이터와 기계학습/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 인식론적 기반이 되는 통계모형과 확률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료와 모형을 관통하는 일관된 확률론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베이지안 분석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국내 학계에서 베이지안 분석에 대한 개괄적 소개는 많이 진행되었지만 사회과학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실제 분석 사례에 기초한 구체적인 소개는 매우 부족했다. 이로 인해 프로그래밍과 통계이론에 능통한 연구자가 아니라면 베이지안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 장에서는 세계 여자 피겨스케이팅 채점에서 개최국효과의 추정이라는 사례를 통해 베이지안 분석이 연구 질문에 대한 확률론적 답변을 찾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네트워크 분석네트워크는 사회현상의 다양한 양태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통계방법론으로 포섭되는 대부분의 경험 사회과학 연구의 방법론에 비해, 여러 학 문 분과에서 동시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은 몇 가지 측면에 서 기존의 방법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이러한 다학제적 특성 때문에 사회 네트워크 연구방법론에 대한 일목요연한 비교와 형식화는 어려웠다. 이 장은 이론적 가설의 경험적 검증을 목표로 하는 현대 경험 사회과학 연구의 본질적인 형식 안에서 여러 학문적 원류를 갖고 있는 네트워크 구조 분석의 다양한 방법론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1) 측정이론, 2) 전통적인 통계방법론에 포섭될 수 있는 방법론, 3) 네트워크 형성 모형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엮은이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은이김남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손윤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부교수안두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부교수우병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이병재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차태서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하상응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관리자 2020.11.24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
박종희 엮음김남규․박종희․손윤규․안두환․우병원․이병재․차태서․하상응 지음
이 책은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경험과학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정치학의 연구 방법론 안내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학 방법론의 신성(新星)들을 모아 정치학 방법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정치학의 다양한 방법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저자들이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군분투한 결과, 실험, 인과적 추론, 시계열-횡단면 분석, 생존 분석, 베이지안 분석, 네트워크 분석, 담론 분석, 과정 추적 연구와 같은 중요한 방법론 주제에 대해 귀중한 안내의 글을 모을 수 있었다.
각 챕터의 내용은 최근 10년 동안 해당 방법론을 이용해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소장학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방법론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사변적인 해설을 지양하고 예제와 구체적인 설명으로 해당 방법론의 장점과 사용법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들이 최선을 다했다.
사회과학이나 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방법론이라는 문을 통해 정치학과 사회과학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인과적 추론인과추론은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지난 30여 년간 통계학, 사회과학 및 의학 등의 분야에서 인과추론의 방법론에 많은 개념적, 방법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이 장은 인과추론 방법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며, 반사실적 인과 개념, 잠재적 산출 프레임워크 및 사회과학/의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들에 대한 소개를 포함한다. 또한, 매개분석 및 구조방정식 모형에 대한 인과모델 관점에서의 논의도 제시된다.실험 연구 방법론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학 경험연구 분야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실험 연구 방법론의 기본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실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험을 수행하여 어떻게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연구 수행 도중 빈번히 겪는 문제점과 분석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한다. 구체적으로 균형점검, 조작점검, 비동조의 문제를 다루고, 하위집단 분석과 매개 분석을 통해 이미 발견된 인과효과가 작동하는 조건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방법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실험 연구의 약점인 외적 타당성 문제, 이론적 근거의 빈약성 문제, 그리고 윤리적 고려의 필요성 문제 등을 다루면서 실험 연구의 오용과 남용의 위험성을 지적한다.시계열-횡단면 자료 분석횡단면 자료와 시계열 자료를 결합한 시계열-횡단면 자료는 여러 정치학 이론의 시공간과 관련된 가설을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게 해 준다. 현재 시계열-횡단면 자료는 모든 정치학 분야의 양적 연구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자료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시계열-횡단면 자료의 특성을 살펴보고 통계분석을 할 경우 고려해야 할 이슈들을 살펴본다. 특히 시계열-횡단면 분석 모형의 오차항 구조, 개체 간 이질성, 동태적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분석의 예시를 통해 논의된 이슈들을 실제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사건사 분석사건사 분석은 어떤 사건의 발생 여부뿐만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 즉 사건의 역사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통계 분석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사건사 분석은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들이 사건의 발생과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독립변수들이 사건의 발생 확률과 사건 발생까지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증가 혹은 감소시키는지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정치학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분야, 보건학, 의학, 공학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사건사 분석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소개하고, 사건사 분석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사건사 분석이 어떤 연구 질문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담론 분석이 장에서는 국제정치학에서 담론 분석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의 학문에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본다. 우선 언어적/문화적/해석적 전환 이후 담론 연구의 내용을 특히 푸코주의적 관점에서 소개하면서, 담론 분석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들을 다루었다. 다음으로 소위 “제3논쟁”을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부상한 국제정치학 내에서 담론 연구의 현황을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담론 분석이 우리의 국제정치 연구에 주는 의미를 이론적 차원과 정책적 차원으로 나눠 고찰하였다.과정 추적 방법이 장에서는 1980년대 이래 질적 연구 분야에서 양적 연구의 파상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 주목받고 있는 과정 추적 방법을 소개한다. 특정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의 파악을 핵심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과정 추적 방법은 사회과학의 본질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는 연구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근래 미국 정치학계의 과정 추적 방법에 대한 논의를 대략적으로 정리한 뒤 구체적인 사례로서 양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관한 대표적인 두 역사학 연구를 재구성해 본다.베이지안 분석빅데이터와 기계학습/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 인식론적 기반이 되는 통계모형과 확률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료와 모형을 관통하는 일관된 확률론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베이지안 분석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국내 학계에서 베이지안 분석에 대한 개괄적 소개는 많이 진행되었지만 사회과학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실제 분석 사례에 기초한 구체적인 소개는 매우 부족했다. 이로 인해 프로그래밍과 통계이론에 능통한 연구자가 아니라면 베이지안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 장에서는 세계 여자 피겨스케이팅 채점에서 개최국효과의 추정이라는 사례를 통해 베이지안 분석이 연구 질문에 대한 확률론적 답변을 찾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네트워크 분석네트워크는 사회현상의 다양한 양태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통계방법론으로 포섭되는 대부분의 경험 사회과학 연구의 방법론에 비해, 여러 학 문 분과에서 동시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은 몇 가지 측면에 서 기존의 방법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이러한 다학제적 특성 때문에 사회 네트워크 연구방법론에 대한 일목요연한 비교와 형식화는 어려웠다. 이 장은 이론적 가설의 경험적 검증을 목표로 하는 현대 경험 사회과학 연구의 본질적인 형식 안에서 여러 학문적 원류를 갖고 있는 네트워크 구조 분석의 다양한 방법론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1) 측정이론, 2) 전통적인 통계방법론에 포섭될 수 있는 방법론, 3) 네트워크 형성 모형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엮은이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은이김남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손윤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부교수안두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부교수우병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이병재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차태서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하상응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관리자 2020.11.24

246
서보혁, 권영승 엮음.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 비교평화연구의 이론과 실제』
서보혁·권영승 엮음박영사, 2020.10
책소개 국제 평화연구계에서는 적어도 냉전이 해체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지역과 이슈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비교평화연구를 전개해왔다. 평화연구는 규범적 차원과 분석적 차원을 함께 갖고 있으며, 여기서 비교가 생략되면 평화연구는 편중된 도덕과 건조한 관찰 중 어느 한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비교는 평화연구에서 연구자가 뽐낼 기교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밟아야 할 연구방법이다. 특히 우리에게 시급한 한반도 평화문제조차 비교를 건너뛰면 그 연구의 타당성이 낮고 그 결과가 정책에 기여할 바도 작을 수밖에 없다. - 목 차 -서문 서론: 연구의 목적과 범위 – 서보혁 제1부: 비교평화연구의 관점과 방법평화로 가는 두 길: 위로부터의 평화와 아래로부터의 평화- 차승주2. 분쟁의 평화적 전환 이론과 그 적용 – 조우현 제2부: 내전 이후 평화구축3.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광기의 분쟁과 강요된 평화 – 황수환·허창배4.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해 과정과 평화: ‘진실화해위원회’와 민주주의 공고화 - 조원빈5. 르완다: 비극의 언덕에 싹튼 평화 – 권영승6. 콜롬비아 평화 프로세스: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긴 여정 – 홍석훈7. 사이프러스의 장기분단과 통일 협상 - 서보혁 제3부: 국제전 이후 평화구축8.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분할과 장기분쟁 – 조원득9.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구축 과정과 전망 – 김동석10. 중국-베트남 분쟁과 국교정상화: 평화협정의 한계 – 이상숙 결론: 분쟁의 평화적 전환 사례들과 한반도 – 권영승·서보혁 관리자 2020.10.23
서보혁·권영승 엮음박영사, 2020.10
책소개 국제 평화연구계에서는 적어도 냉전이 해체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지역과 이슈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비교평화연구를 전개해왔다. 평화연구는 규범적 차원과 분석적 차원을 함께 갖고 있으며, 여기서 비교가 생략되면 평화연구는 편중된 도덕과 건조한 관찰 중 어느 한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비교는 평화연구에서 연구자가 뽐낼 기교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밟아야 할 연구방법이다. 특히 우리에게 시급한 한반도 평화문제조차 비교를 건너뛰면 그 연구의 타당성이 낮고 그 결과가 정책에 기여할 바도 작을 수밖에 없다. - 목 차 -서문 서론: 연구의 목적과 범위 – 서보혁 제1부: 비교평화연구의 관점과 방법평화로 가는 두 길: 위로부터의 평화와 아래로부터의 평화- 차승주2. 분쟁의 평화적 전환 이론과 그 적용 – 조우현 제2부: 내전 이후 평화구축3.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광기의 분쟁과 강요된 평화 – 황수환·허창배4.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해 과정과 평화: ‘진실화해위원회’와 민주주의 공고화 - 조원빈5. 르완다: 비극의 언덕에 싹튼 평화 – 권영승6. 콜롬비아 평화 프로세스: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긴 여정 – 홍석훈7. 사이프러스의 장기분단과 통일 협상 - 서보혁 제3부: 국제전 이후 평화구축8.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분할과 장기분쟁 – 조원득9.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구축 과정과 전망 – 김동석10. 중국-베트남 분쟁과 국교정상화: 평화협정의 한계 – 이상숙 결론: 분쟁의 평화적 전환 사례들과 한반도 – 권영승·서보혁 관리자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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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지음, 『미중 카르텔: 갈등적 상호의존의 역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의 패권국 미국과,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패권 전쟁이라도 벌이게 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 책은 미중 갈등에 대한 주류적 해석을 경계하고, 한반도의 시각에서 미중 관계의 이면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미중 관계의 역사적 배경, 결정적인 쟁점들, 그리고 한국의 선택 등을 17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미국과 중국 간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카르텔’로 표현하는 이 책은 일종의 모험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관점과도 중국의 관점과도 거리를 둔, 좀 다른 시각으로 차분하게 미중 관계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과 중국에서 생산·유통되는 관련 논의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믿음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목차>
들어가며 007
1.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유령_012
2. 미국과 중국의 첫 대면 : 원교근공과 문호개방의 만남_030
3. 국민당의 부상과 미국의 접근 : 중국 통일과 일본의 도전_048
4. 미국, 장제스, 마오쩌둥의 삼중주 : 국공 내전과 미국의 전략_066
5. 한국전쟁이라는 파국 : 스탈린의 미중 갈라놓기_084
6. 미군은 왜 베트남 17도선을 넘지 않았을까? : 중소 분쟁과 미중 공감대의 형성_100
7. 미중 화해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 : 중월전쟁과 한미 관계의 악화_118
8. 중국의 개혁 개방과 달러 체제로의 편승_138
9. 중국 위협론 대 반미 민족주의_158
10. 자본주의 국제 질서와 미중 관계의 구조화 : 글로벌 거버넌스와 주권 경쟁의 관성_176
11. 타이완 딜레마 : 포기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미국과 중국_196
12. 북한이라는 ‘게토’ : 한반도 안정을 위한 미중의 전략_214
13. 일대일로와 위안화의 국제화 : 대미 취약성 극복하기_230
14. 중국의 기술 굴기와 미중 무역 전쟁 : 미국은 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경계하는가?_246
15.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경쟁 : 신용 게임_262
16.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 종합 국력 더하기 문제 해결 능력_280
17. 친미와 친중 사이 : 한반도는 무엇을 할 것인가?_300
박홍서 2020.09.22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의 패권국 미국과,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패권 전쟁이라도 벌이게 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 책은 미중 갈등에 대한 주류적 해석을 경계하고, 한반도의 시각에서 미중 관계의 이면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미중 관계의 역사적 배경, 결정적인 쟁점들, 그리고 한국의 선택 등을 17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미국과 중국 간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카르텔’로 표현하는 이 책은 일종의 모험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관점과도 중국의 관점과도 거리를 둔, 좀 다른 시각으로 차분하게 미중 관계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과 중국에서 생산·유통되는 관련 논의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믿음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목차>
들어가며 007
1.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유령_012
2. 미국과 중국의 첫 대면 : 원교근공과 문호개방의 만남_030
3. 국민당의 부상과 미국의 접근 : 중국 통일과 일본의 도전_048
4. 미국, 장제스, 마오쩌둥의 삼중주 : 국공 내전과 미국의 전략_066
5. 한국전쟁이라는 파국 : 스탈린의 미중 갈라놓기_084
6. 미군은 왜 베트남 17도선을 넘지 않았을까? : 중소 분쟁과 미중 공감대의 형성_100
7. 미중 화해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 : 중월전쟁과 한미 관계의 악화_118
8. 중국의 개혁 개방과 달러 체제로의 편승_138
9. 중국 위협론 대 반미 민족주의_158
10. 자본주의 국제 질서와 미중 관계의 구조화 : 글로벌 거버넌스와 주권 경쟁의 관성_176
11. 타이완 딜레마 : 포기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미국과 중국_196
12. 북한이라는 ‘게토’ : 한반도 안정을 위한 미중의 전략_214
13. 일대일로와 위안화의 국제화 : 대미 취약성 극복하기_230
14. 중국의 기술 굴기와 미중 무역 전쟁 : 미국은 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경계하는가?_246
15.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경쟁 : 신용 게임_262
16.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 종합 국력 더하기 문제 해결 능력_280
17. 친미와 친중 사이 : 한반도는 무엇을 할 것인가?_300
박홍서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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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외 공저,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다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 핵 보유 이후 국가행동의 변화』
김태형, 박민형, 설인효, 이근욱, 이장욱, 정성철, 최아진, 황지환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 | 2020년 05월 13일 발행ISBN 979-11-89946-58-6 (93340)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의 당면한 현실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 위협이 일상화되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사실상의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의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은 북한이 핵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대외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주요한 관심은 북한이 현상타파적인(혹은 공격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지, 현상유지적인(혹은 방어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핵 확산 안정론 논쟁의 관점에서 보면, 핵 보유가 북한을 대외적으로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혹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의미한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의 주요한 목표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북한이 핵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정책을 펼칠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우선 국가들이 핵 보유 이후 대외적으로 어떠한 행동변화를 보이는지 일반적인 경향을 분석한다. 둘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신흥 핵무기 보유국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들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정책을 실제로 보여주었는지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협상에 대한 이들 국가들의 대응 과정도 살펴본다. 셋째,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실험이 북한의 대외전략과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고 향후 전개될 북한의 행동을 예측해본다. 1장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이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다. 다음과 같은 4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1)이스라엘과 같이 핵전력의 존재 자체를 숨기거나, (2) 인도와 같이 핵무기 사용위협에서 자제하거나, (3) 파키스탄과 같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핵전력을 소극적으로 공개하면서 버티거나, (4) 북한과 같이 핵무기 사용을 과장한다. 즉 향후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위협하면서 과장되게 행동할 것이며,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국지도발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위기 안정성의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 북한 핵무기 지휘통제체제와 안정-불안정 역설 등에 대비해야 한다. 2장은 국가의 핵 보유가 동맹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북중동맹의 변화 가능성을 살핀다. 탈냉전기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약화된 북중동맹은 향후 (1) 방어동맹으로 회귀, (2) 상호결박 추구, (3) 동맹의 종식 중 하나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북중 관계의 변화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하여 불확실성이 증가한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3장은 핵 보유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제재대상국의 대응전략을 다룬다. 먼저 경제제재 전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핵을 포함한 대량학살 무기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제재의 특징을 살펴본다. 그리고 핵무기 보유 전후로 부과된 제재와 제재위협의 원인과 대응전략을 여섯 가지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사례분석은 제재위협과 실행의 두 단계를 구분하여 사례를 선정하였다. 분석의 종속변수인 경제제재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위협과 실행단계로 나누어 한국과 대만(위협 성공), 남아프리카공화국(제재 성공), 이스라엘(위협 실패), 인도와 파키스탄(제재 실패)의 핵 보유 시도와 제재 과정을 설명하였다. 특히 핵 보유 성공과 실패에 이르기까지 제재대상국의 국내적, 국제적 조건을 살펴보고, 핵무기를 포기하게 된 원인과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경우 제재의 해제 과정을 설명하였다. 4장은 핵 보유 이후 국가들의 행동방식 변화 중 국방정책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핵무기 보유 이전과 이후 국방정책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여 한반도의 군사안보적 함의를 도출하는 것이 본 장의 핵심 목적이다. 국방정책 변화를 탐색하기 위해서 살펴본 요소들은 국방비의 변화, 재래식 전력 증강 추이, 각국의 전략 변화 등이다. 이를 통해 지역 핵 보유국들은 핵 보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국방비 및 재래식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군사전략의 경우 핵을 가진 국가라 할지라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국가와의 재래식 전력의 차이로 인해 핵 정책의 기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장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핵전략 속에서 핵 비확산 정책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의 핵 비확산을 위한 수단을 군사적, 외교적, 제도적 측면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미국의 핵 비확산 전략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하여 유지하고 있는 국가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응 전략과 정책을 살펴보고 분석한다. 미국의 핵 비확산을 위한 국제적 규범과 제재의 적용은 일관성을 결여하는 등 한계가 있어왔고, 전략적 변수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의 변화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현재까지 북한의 핵 보유국 인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장은 핵 보유 이후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을 제외하고 핵을 보유한 첫 번째 국가였고 또 국제사회의 묵인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대와 압박 속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며 자신이 처한 전략 상황을 활용했던 이스라엘의 대외전략은 핵 보유를 추구하는 국가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 많은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핵 보유 과정 및 핵전략에 대한 분석은 북한이 동북아의 전략적 대립구도를 적극 활용하며 핵 보유를 추구해왔고 향후 전략적 상황에 대한 합리적 대응과 선택의 과정에서 핵전략과 태세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7장은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한 인도의 사례를 검토한다. 인도의 핵무장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제”로 표현할 수 있다. 기존의 핵무장국가 및 국제사회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핵무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가급적 큰 반발을 야기하지 않는 과정을 통해 핵무장을 추진했다. 또한 이러한 자제는 핵무장에 대한 국론을 결집하기 어려운 인도의 복잡한 국내정치가 원인이기도 했다. 인도는 본격적 핵무장 이후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전개했고 그 결과 적대국 파키스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착륙의 과정을 통해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인도의 사례는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어떠한 대외정책 및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8장은 여러 면에서 현재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가장 유사하고 큰 함의를 제공할 수 있는 파키스탄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파키스탄처럼 재래식 전력에서 압도하는 상대방에 맞서 신뢰할 만한 강대국의 핵우산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핵개발에 매진하여 왔다. 강력한 제재와 확고한 군사적 대비태세 구축과 함께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회복,오인 방지, 점진적 신뢰구축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파키스탄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9장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 및 보유 과정에서 보여준 국가전략과 대외정책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 장은 북한의 전략과 행동이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어떠한 유사성과 차이를 보이는지 설명한다. 핵 보유가 국가의 대외정책에 미치는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북한이 핵실험 이후 보여준 지난 10여 년의 전략과 정책을 살펴본다. 이러한 분석을 국제정치에서 제시하는 현상타파 대 현상유지의 국가성향 변화에 초점을 두면서 논의한다. 이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과정에 한반도의 기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고 했는지 혹은 한미동맹에 대한 억지능력을 강화하면서 체제생존을 도모하는 현상을 유지하려고 했는지 검토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 전략적으로는 현상타파 구상을 하면서도 정책적으로는 현상유지 경향을 보여주었음을 설명한다.
관리자 2020.08.19
김태형, 박민형, 설인효, 이근욱, 이장욱, 정성철, 최아진, 황지환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 | 2020년 05월 13일 발행ISBN 979-11-89946-58-6 (93340)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의 당면한 현실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 위협이 일상화되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사실상의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의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은 북한이 핵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대외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주요한 관심은 북한이 현상타파적인(혹은 공격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지, 현상유지적인(혹은 방어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핵 확산 안정론 논쟁의 관점에서 보면, 핵 보유가 북한을 대외적으로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혹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의미한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의 주요한 목표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북한이 핵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정책을 펼칠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우선 국가들이 핵 보유 이후 대외적으로 어떠한 행동변화를 보이는지 일반적인 경향을 분석한다. 둘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신흥 핵무기 보유국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들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 이후 어떠한 대외전략과 정책을 실제로 보여주었는지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협상에 대한 이들 국가들의 대응 과정도 살펴본다. 셋째,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실험이 북한의 대외전략과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고 향후 전개될 북한의 행동을 예측해본다. 1장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이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다. 다음과 같은 4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1)이스라엘과 같이 핵전력의 존재 자체를 숨기거나, (2) 인도와 같이 핵무기 사용위협에서 자제하거나, (3) 파키스탄과 같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핵전력을 소극적으로 공개하면서 버티거나, (4) 북한과 같이 핵무기 사용을 과장한다. 즉 향후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위협하면서 과장되게 행동할 것이며,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국지도발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위기 안정성의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 북한 핵무기 지휘통제체제와 안정-불안정 역설 등에 대비해야 한다. 2장은 국가의 핵 보유가 동맹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북중동맹의 변화 가능성을 살핀다. 탈냉전기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약화된 북중동맹은 향후 (1) 방어동맹으로 회귀, (2) 상호결박 추구, (3) 동맹의 종식 중 하나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북중 관계의 변화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하여 불확실성이 증가한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3장은 핵 보유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제재대상국의 대응전략을 다룬다. 먼저 경제제재 전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핵을 포함한 대량학살 무기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제재의 특징을 살펴본다. 그리고 핵무기 보유 전후로 부과된 제재와 제재위협의 원인과 대응전략을 여섯 가지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사례분석은 제재위협과 실행의 두 단계를 구분하여 사례를 선정하였다. 분석의 종속변수인 경제제재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위협과 실행단계로 나누어 한국과 대만(위협 성공), 남아프리카공화국(제재 성공), 이스라엘(위협 실패), 인도와 파키스탄(제재 실패)의 핵 보유 시도와 제재 과정을 설명하였다. 특히 핵 보유 성공과 실패에 이르기까지 제재대상국의 국내적, 국제적 조건을 살펴보고, 핵무기를 포기하게 된 원인과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경우 제재의 해제 과정을 설명하였다. 4장은 핵 보유 이후 국가들의 행동방식 변화 중 국방정책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핵무기 보유 이전과 이후 국방정책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여 한반도의 군사안보적 함의를 도출하는 것이 본 장의 핵심 목적이다. 국방정책 변화를 탐색하기 위해서 살펴본 요소들은 국방비의 변화, 재래식 전력 증강 추이, 각국의 전략 변화 등이다. 이를 통해 지역 핵 보유국들은 핵 보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국방비 및 재래식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군사전략의 경우 핵을 가진 국가라 할지라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국가와의 재래식 전력의 차이로 인해 핵 정책의 기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장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핵전략 속에서 핵 비확산 정책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의 핵 비확산을 위한 수단을 군사적, 외교적, 제도적 측면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미국의 핵 비확산 전략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하여 유지하고 있는 국가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응 전략과 정책을 살펴보고 분석한다. 미국의 핵 비확산을 위한 국제적 규범과 제재의 적용은 일관성을 결여하는 등 한계가 있어왔고, 전략적 변수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의 변화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현재까지 북한의 핵 보유국 인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장은 핵 보유 이후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을 제외하고 핵을 보유한 첫 번째 국가였고 또 국제사회의 묵인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대와 압박 속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며 자신이 처한 전략 상황을 활용했던 이스라엘의 대외전략은 핵 보유를 추구하는 국가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 많은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핵 보유 과정 및 핵전략에 대한 분석은 북한이 동북아의 전략적 대립구도를 적극 활용하며 핵 보유를 추구해왔고 향후 전략적 상황에 대한 합리적 대응과 선택의 과정에서 핵전략과 태세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7장은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한 인도의 사례를 검토한다. 인도의 핵무장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제”로 표현할 수 있다. 기존의 핵무장국가 및 국제사회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핵무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가급적 큰 반발을 야기하지 않는 과정을 통해 핵무장을 추진했다. 또한 이러한 자제는 핵무장에 대한 국론을 결집하기 어려운 인도의 복잡한 국내정치가 원인이기도 했다. 인도는 본격적 핵무장 이후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전개했고 그 결과 적대국 파키스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착륙의 과정을 통해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인도의 사례는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어떠한 대외정책 및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8장은 여러 면에서 현재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가장 유사하고 큰 함의를 제공할 수 있는 파키스탄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파키스탄처럼 재래식 전력에서 압도하는 상대방에 맞서 신뢰할 만한 강대국의 핵우산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핵개발에 매진하여 왔다. 강력한 제재와 확고한 군사적 대비태세 구축과 함께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회복,오인 방지, 점진적 신뢰구축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파키스탄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9장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 및 보유 과정에서 보여준 국가전략과 대외정책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 장은 북한의 전략과 행동이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어떠한 유사성과 차이를 보이는지 설명한다. 핵 보유가 국가의 대외정책에 미치는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북한이 핵실험 이후 보여준 지난 10여 년의 전략과 정책을 살펴본다. 이러한 분석을 국제정치에서 제시하는 현상타파 대 현상유지의 국가성향 변화에 초점을 두면서 논의한다. 이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과정에 한반도의 기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고 했는지 혹은 한미동맹에 대한 억지능력을 강화하면서 체제생존을 도모하는 현상을 유지하려고 했는지 검토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 전략적으로는 현상타파 구상을 하면서도 정책적으로는 현상유지 경향을 보여주었음을 설명한다.
관리자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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